▲ 이만수 SK 수석코치. |
ⓒ 오마이뉴스 조경국 |
시계는 낮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이만수 코치였다. 약속시간이 오후 1시인데도 예정된 구단사무실 도착시간인 12시 30분을 조금 넘을 것 같다며 전화를 한 것이다.
잠시 후 이만수 코치가 구단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 코치의 네 번째 손가락에는 10월 열린 입단식 때도 그랬듯이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기념 반지가 끼어 있었다. 175㎝, 84㎏.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에게서는 왠지 모를 힘이 느껴졌다.
이만수 코치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기자라기보다는 프로야구 팬 자격으로 이 코치를 만났다. 실제 이 코치는 '팬과의 만남'이란 말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답했다. 다음은 이만수 코치와의 인터뷰 전문.
"삼성이 아니라 SK에 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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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가서 2006년 10월에 한국에 돌아왔으니 9년만이다. 우선 그냥 좋다. 미국에서는 어려운 점도 많았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니 고향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함께 야구를 할 수 있는 선후배가 많다는 것도 즐겁다."
-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팬들이 있는 삼성이 아닌 SK로 한국 무대에 복귀했다.
"우선 항상 나를 응원해 주고 성원해 주신 팬들에게 고맙다. 그러나 SK로 왔다고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야구는 다 똑같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많은 점이 힘들었다. 우선 언어 문제가 가장 컸다. 내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두 번째 힘든 것이 문화였고, 세 번째는 30년 동안 배웠던 야구와는 다른 야구였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가기까지 단 한 번도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치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 오랫동안 한국과 미국 야구를 경험했다. 두 나라 타자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 타자들의 타격 폼은 틀에 박혀있다. 조직 야구를 지향하는 일본야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인데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타자들이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선수들의 폼이 똑같다. 그리고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지 본인이 하고 싶은 폼이 아니기 때문에 개성이 없다.
반면 미국에서는 타자들을 그대로 놔둔다. 어릴 적부터 익혀왔던 폼이 마이너리그를 거치면서 자신에게 맞는 폼으로 완성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가 동네야구 선수고, 누가 프로야구 선수인지 모를 정도다. 미국 타자들은 자신의 폼을 익혀왔기에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금방 빠져나온다. 반면 한국 타자들은 자신이 습득한 폼이 아니기 때문에 슬럼프를 탈출할 해법을 찾지 못해 슬럼프를 오래 겪기도 한다."
- 기술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현역 시절 꿈이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이었다. 1984년에 LA 다저스 캠프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모든 선수들이 덩치가 커서 그 다음부터 메이저리거는 꿈도 꾸지 못했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덩치가 작은 선수들도 언제든지 장타를 때려낼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체 중심으로 타격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타자들은 상체중심으로 타격을 하기 때문에 타구를 멀리 보내지 못하는 것 같다."
- 한국으로 복귀한 후 SK 선수들과 두 달을 함께 했는데 느낌은.
"좋다. 모든 선수들이 착하다. 내게 24살 아들이 있는데 모든 선수들이 아들 같다. 나이가 조금 많은 선수들은 조카 같이 보인다. 한국에 오기까지 어렵기도 했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 SK에는 정상호와 이재원이라는 대형포수가 있다. 포수 출신으로서 두 선수를 평가한다면?
"두 선수 모두 한국 야구를 이끌어갈 대형포수들이다. 내가 봐도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 역할은 수석코치다. 다른 코치들의 역할을 침범하면 안 된다. 박철영 배터리 코치로부터 두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배터리 코치에게 이야기해주는 경우는 때때로 있지만 그 밖의 경우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 이만수 코치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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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보조 역할이다.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석코치가 선수들을 이끈다. 만약 감독이 원하는 방향이 확 바뀐다면 수석코치도 그 방향을 따라 선수들을 이끈다. 그 밖에 여러 잡다한 일들도 머슴처럼 한다(웃음)."
- 한국으로 복귀했지만 전지훈련 때문에 두 달 동안 쉴 틈이 거의 없었다. 힘들지는 않은지.
"첫 두달 동안 '한국야구는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힘들긴 했지만 이것이 한국야구 실정에 맞게끔 설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준비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집이 모두 서울에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서울에 집을 잡을까 생각하다가 연고지인 인천에 잡기로 했다. '나그네 인생'이라고나 할까. 미국에 처음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를 가든지 이는 겪어야 할 과정이다."
- 아들이 미국에 있다. 보고 싶지 않은가.
"큰 아들은 24살, 작은 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다. 큰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고, 작은 아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무래도 떨어져 있다보니 그립기도 하다."
"감독님과 내가 '물과 기름'? 질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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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두 시즌 동안 감독님을 모셨다. 주위에서 '김성근 감독은 관리야구를 하는데 이만수 코치와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다', '물하고 기름이 만났다'고들 말을 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질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웃음). 감독님도 '만수야 질투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냐,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고 말씀하신다. 구단에서도 처음에 이런 부분을 걱정했는데 야구는 똑같다."
- 아직까지도 선수 못지않은, 오히려 선수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이제는 선수가 아니고 지도자인데 그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할 생각이다.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다."
-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는데.
"사실 올해 5월 2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연장계약을 맺었다. 한국에 오려면 위약금을 물어야했는데 그 곳에 있는 모든 분들이 가족처럼 대해 주며 '당신이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면 우리들도 기쁠 것이다'며 흔쾌히 한국행을 허락했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 일부 팬들은 성적 지상주의가 판치는 한국야구에서 팬들을 즐겁게 하는 스포테인먼트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동안 선수들이 팬들과 가까이 가지 못하고 실망시키는 플레이들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최근 한국 야구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팬을 위한 야구를 열심히 펼칠 생각이다."
- 선수시절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아쉽지 않은지?
"아쉬운 점은 별로 없다. 코치로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맛본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비록 선수시절에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우선 감사하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9년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팬들이 홈페이지에 좋은 글을 올려준 것이 큰 힘이 됐다. 한국에 복귀하기까지 꾸준히 기다려준 팬들이 고맙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팬들에게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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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치는 "한국에 오면서 홈페이지에 싣는 칼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미국에서 겪었던 일 등을 글로 펼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중 있었던 일 한 가지. 인터뷰 도중 미국에 있는 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과 다정하게 통화를 나눈 이 코치는 전화를 마치며 "그래, 나도 사랑한다" 하고 말했다.
SK 선수들을 아들과 조카 같다고 느끼고,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말하며, 아들과는 스스럼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남자 이만수다.